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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로 그림 그리기 - 터키 보드룸 그림여행

by FlyingJin 2020.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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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로 그림 그리기 : 터키 보드룸 여행 드로잉

터키의 남부 휴양 도시 Bodrum

 

3월 초이지만 한낮의 기온은 이미 20도가 넘었다. 한낮에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금세 지쳤다. 크지 않은 도시라 2일 동안 둘러보니 웬만한 곳은 다 가본 것 같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해변 카페들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 해변은 수면 아래로 떨어지는 해와 함께 바닷물에 번져 가는 노을을 보는 명당자리이다. 해가 난 후에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기에 제격이다. 보드룸은 터키에서는 매우 유명한 휴양지인데 아직 한국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터키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는 거 보면 아직은 인지도 면에서 그리스에 많이 밀리는 느낌이다.

 

보드룸은 지중해의 많은 도시가 그러하듯 하얀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지중해 남부의 휴양도시이다. 바다쪽으로 뻗어나간 보드룸 성 또한 멋진 풍경에 일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비해 물가는 절반 가격으로 저렴하고, 고대 로마 유적은 그리스만큼 또는 그리스보다 더 많이 더 원형으로 보존하고 있다. 

 

 

터키, 보드룸

 

 

TMI를 좀 하자면..

2020년 3월 평상시에는 사람으로 가득찬다는 카페들은 휑하기 그지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을 강타하고 있었다. 연일 수백의 사망자가 속출했다. 3월 초, 이때까지도 터키는 아직 스스로 코로나 청정국이라고 주장?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터키에도 확진자가 1명, 다음날 2명 그리고 다음날 6명이라고 연일 발표하면서 불안함이 감지됐다. 터키는 아시아 (일본 제외), 유럽을 오가는 하늘길을 닫았고, 그리스 섬을 오가는 모든 페리를 중지시켰다.

"비행기 다 끊어졌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돌아가? 그래도 아름다운 보드룸에서 갇혀서 얼마나 다행이야. 배가  끊겼지만, 그리스 섬이 저기 보일 정도로 가까우니까 수영해서 갈 수도 있어. 그런데 문제는 수영해서 가면 그리스 군인한테 총 맞을 수는 있지 하하하" 

그때 터키가 중동 난민을 통과시켜 사실상 EU 국가들로의 통로를 개방함으로써 그리스 국경은 난민을 막기 위해 긴장상태였고 가까이 오면 발포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터키는 코로나 문제 뿐 아니라 인접한 나라와의 전쟁위기, 난민문제로 인한 EU와의 신경전 등으로 시끄러웠다.

카페 주인은 이 어처구니없는 위기 상황을 자조적인 유머로 넘긴다. 다음 달부터는 실질적인 성수기가 시작되는 달이라 상황이 나아지길 바란다고 한다. 우리의
여행일정을 급수정한다. 내일 이스탄불로 돌아가서 아직 남아있는 카타르 경유 라인을 이용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 당장 그 하늘길조차 막힌다고 해도 이상할 거 없이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발 빠르게 움직여서 나는 안전한 내 나라로 돌아왔고 그 후 1달 만에 터키는 현재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다.  

 

일몰을 그리고 싶다 생각했을 때 이미 해가 거의 지고 있었다. 내일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나는 꼭 여기서 스케치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오늘 주제는 10분 만에 일몰 그리기로 잡았다.  드로잉 후 마무리 인증샷까지 찍으려면 시간이 없다. 해가 저물면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는 웬만한 물감이 다 누르스름해 보이기 때문에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인증샷까지 찍어야 한다.

 

정신없이 스케치를 하고 수채를 하려는 순간!! 물이 없다. 워터브러쉬도 비어있고 생수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아. 여긴가 어딘가. 지천이 물이다. 바닷물을 떴다. 바닷물로 그리려니 왠지 색이 다 녹색빛이 도는 느낌이다. (물론 급해서 붓을 깨끗이 안 씻었겠지..)

 

 

 

 

급하게 드로잉을 하고 있는데 구경꾼이 나타났다. 이런일은 흔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오랫동안 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 부담스러워. 그렇게 가까이서 보지 마...

 

 역시 로망과 현실은 다르다. 해는 완전히 지고 아쉽지만 여기서 마쳐야 한다. 물을 뜬 시간까지 합해서 총 15분이 걸렸다.

 

 

 

스스로 이런 테마나 미션을 가지고 여행 드로잉을 하면 포기를 막는 원동력이 된다. 초보 스케쳐에게 제일 중요한 건 아무리 내 그림이 부끄러워도 중간에 포기하거나 찢어버리지 말고 끝까지 마무리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려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하면서 이건 망했네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매우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사진 찍어서 보정하면 또 볼만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사인까지 끝까지 해보는 습관을 들인다. 

 

현장에서 여행드로잉을 하면 그 순간에 긴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후에 드로잉을 보면 그때의 바람, 온도, 냄새, 기분 모든 것 이 그대로 소환된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물론 나도 잘 그리고 싶다.

아까의 나도 그림을 찢어버리고 싶게 부끄러웠던 건 사실이다 ㅜㅜ

 

스케치가 자체보다 15분동안 바닷물까지 퍼가면서 남긴 추억일기라서 무척 맘에 든다. 그림을 보면 보드룸 추억이 생각나다.

 

 

Laloran 수채화 노트

White nights 화이트나이츠 고체 물감

Lami 만년필 + Nooder 방수 잉크

feat. 에게해 바닷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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