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에서는 종이가 제일 중요하다. 170g? 140g? 일반 노트 종이는 거들떠도 안 봤는데,
그럼에도 나의 지갑을 열어버린 아이를 만났다.
피렌체 두오모를 가는 길에 우연히 들어간 빈티지 노트샵에서 손에 촥 감기는 가죽을 감싼 노트를 만났다.
이 아이를 어찌 데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
다 쓰고 나면 분리되는 가죽 커버로 나만의 수제 수채화 노트도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 현명함 소비임을 자부하며 과감한 결제!
사실 세상의 아름다움은 무용에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ㅋㅋ
멋진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가죽 커버는 쓸데마다 거추장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자꾸 손이 가게 되는 매력을 가졌다면 그 어떤 노트보다 눈부신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새 노트의 첫 장은 언제나 스트레스다. 언제나 글씨는 찌그러지고 드로잉은 망치기 마련.
첫 장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시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첫 장은 피렌체에 온 만큼 두오모를 남겨두기로 했다. 이 멋진 건축물을 감히 어찌 나의 비루한 솜씨로 담을 수 있을까...



내 눈에 보이는 한 가지 포인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오렌지와 갈색이 섞인 멋진 지붕! 완벽하지 않아도 내 눈에 보이는 지금의 나의 느낌만 담으면 된다. 종이가 얇은 만큼 포인트 색만 살짝 칠해보았다.
피렌체 두오모라 하면 여전히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냉정과 열정사이]. 이제 준세이라고 하면 "그게 누구?"라고 할 만큼 기억 저너머 올드 무비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그 누구도 준세이를 찾는다면서 두오모 계단을 오르면서 농담을 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 시간만큼 나는 연륜이 느껴지는 고인물이 되었는데 변함없이 아름다운 피레체 대성당. 그림을 볼 때마다 그날의 햇살과 바람이 느껴질 것 같아.

사용한 도구
1. 종이 : 피렌체에서 구입한 일반 다이어리 노트 (140-170g 추정)
2. 물감 : 윈저앤뉴튼 코트만 고체물감 12색
3. 만년필: Jinhao 58
4. 잉크 : 누들러 렉싱턴 그레이
5. 붓: Pentel 물붓
6. 장소 : https://maps.app.goo.gl/4v2Mph9VyFuZtG6e9
브루넬레스키 돔 · Piazza del Duomo, 50122 Firenze FI, 이탈리아
★★★★★ · 역사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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